2009년 4월 3일 금요일 ( 임신 10주 2일 )

 

 

난 몸살감기가 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입덧이지 더 심해진 것인지

그 날 난 출근을 했다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부탁을 받고 들어줄지언정 내가 부탁을 하고 신세를 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나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부탁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조퇴를 하고 버스를 탈 수 없어서 택시를 타고 기어서 기어서 집으로 왔었단다.

 

아빠가 퇴근하기를 기다렸지만, 아프다는 전화는 커녕 퇴근 중이라는 전화를 받을 힘조차 없었어.

남들 퇴근시간이 난 한참 일할 시간이기 때문에 퇴근해서 돌아왔는데

내가 집에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을꺼야.

그랬는데 보자마자 울음을 쏟아내는 날 보고 더 놀랬겠지.

 

아빠는 바로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기침을 많이하고 열이 많이 나고 하루 종일 다 토했다고 전화를 했더니

태아는 열에 약하니 열이 37도 후반에서 38도 사이까지 오르면 병원으로 바로 와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단다.

( 네 물건도 준비하기 전이라 집에 체온계가 있을 턱이 없었단다. 그러니 짐작으로 병원으로 간거였지.)

 

아픈 몸을 이끌고 택시로 20분 걸려 달려가니 체온만 재고 아무처치도 해주지 않았어. (체온은 37.6도)

야간 당직 의사가 와서 초음파를 확인하고서야 수액을 꽂고 침대에 누울 수 있었는데 굉장히 추웠어. 아마도 열 때문이었겠지.

(처치라고 해봐야 임신 중에 할 수 있는 건 그저 탈수증세로 인한 수분 보충과 비타민 보충 수액 정도란다.)

 

링거를 꽂고도 뒤집어지는 속을 어쩌지 못해 누워있지 못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몇 번씩 토했는지...

(다행히 내가 누워있던 병실은 가족분만 병실이라 침대는 둥글고 넓었고, 화장실도 딸려 있어서 다행이었어.)

그러다 열이 조금씩 내려가면서 안정을 찾고, 조금 눈을 붙였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단다.

내가 널 낳을 때 가족분만실에 들어가지 못 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 날 내가 들어가서 수액을 맞은 곳이 가족분만실이었는데 사진이라도 좀 찍어 둘 것을 그랬다 싶구나...

네가 괜찮은지 초음파를 볼 때 내 아픔에 정신이 팔려 자궁 안을 휘적 휘적 다니는 너를 보면서도

초음파 찍은 거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으니... 그래서 그 날의 초음파는 내 머릿속에만 있단다.

잊.지.말.아.야.지.

 

후 난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일을 그만뒀는데, 그게 잘 한 선택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시 내 마음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일이 하나 있었고, 내가 그만두게 된 계기가

사실은 몸이 아파서 힘든 것 보다 그 일로 인한 영향이 더 크지 않았나 생각되기 때문이란다.

그냥 다녔으면 몸이 아픈건 어떻게든 버텨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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